조각가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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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우

작가 작품

일신강충 4344-1

350x450x40(mm)
Acrylic on panel

World of the truth 433704

720x530x50(mm)
Mixed media / 2004

For meditation space 1401

600x250x630(mm)
Iron plate, PC plate, LED lighting / 2014

빈의자 8411

410x420x620(mm)
Wood

Art Expression 9207

3800×2000×1500mm
Jujeon Seaside, Ulsan City

화원실상 3305

1430x1430x550(mm)
Redish granite / 1990

Mountain and water 8701

3900x1800x500
Black granite / 1986

실상의 계단 3325

2520×8020×1200(mm)
Redish Granite / 1989

EF 8210

2000x1020x700(mm)
White Granite / 1982

Flowers in the Garden

450×450×1220(mm)
Iron Plate+Lighting / 2014

Architectual Related 8701

9000×6000×3500(mm)
수성동아백화점 급기탑, 대구 / 1987

Gate of Prosperity 8802

6000×5500×5000mm
고덕 이마트광장, 서울 / 1988

K Landscape 43301

9000×5000×1800mm
대구 KAMCO빌딩 소공원, 대구 / 1997

May the City is Full of Palgong Mountain’s Vitality!

15000×2500×200(mm)
지하철 대구역사 공공조각 공모작 부조 A / 1992

명상의 쉼터 432801

12000×7500×3500mm
대구도시철도공사 소공원, 대구 / 1995

작가 프로필

현재 한국조각가협회 회원, 선아트센터 조형연구소 대표/환경조각가

1971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공예학과 목칠공예 졸업
1974 Colombo Plan 일본 GK 디자인연구/ ID.ED
1979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졸업
1995 나구리 국제환경미술제 참가 / 일본
2005 ISC 국제조각심포지움,공공조각 발표/씬시나티, 미국
1975-2010 영남대학교 교수/ 환경조형

개인전
1982-환경조각전, 서울관훈미술관,영남대학교 야외갬퍼스,목석철조전
Interior Motives 1986서울전,, EA Documents8990,전, 정관실상4329전,
Taoism 필라델피아전, 서산시 기획초대전, 명상을위한 공공조각전,
ISF 국제조각페스타 2011전, 미술세계기획초대 환경조각전.

단체전
1976-경북도 미술대전초대작가출품외, 미술대학교수작품전 ,홍전, 홍림회전
2009 KEAA환경조형작가회 CUBE SPACE 환경조각 서울전
1986-S.E.A GROUP 환경미술제 학동 해변전, 1992 동해주전 해변전,
2005 미술세계 한국현대미술작가초대 세종문화회관전
2007 ART DC 워싱턴컨벤션센터 아트페어 참가, 2016 SOAF 아트페어 참가
2014- 밀라노국제현대미술전 참가, 인도국제현대미술제 2016뉴델리전 참가

환경작품연구
1988 고덕중심상업지구 번영의 문 8803, 산수 8802 제작설치
1992 지하철대구역사 환경조각공모 최우수작 제작 설치
1995 대구지하철본부 소공원 환경조각공모 최우수작 제작설치
1999 대구명곡주공,최우수 공모작, 산격대우공동주택 공공조각 제작설치
2009 대구시안전테마파크 환경조각공모 최우수작 제작설치

작가 노트

				명상의 공간을 위하여

바른 도와 깨달음에 대한 이해란? 우주 법계의 질서를 바르게 이해하고 판단하여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동양의 선각자들은 천지만물의 창조주를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道라 하였고, 그리하여 道生天地라 하였다. 서양에서는 하나님God이 천지를 창조하여 우주질서를 부여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神이나 부처는 道요 진리의 개념인 것이다. 인간이
만든 종교와 철학은 무엇을 위함인가? 살아있는 동안의 행복과 번영, 유한의 삶으로부터 영원한 삶에 대한 소망의 해답을 위함일 것이다.
자연생태계에서 인류의 공존 번영은 인류가 우주법계의 질서, 즉 道에 순응할 때 가능한 것이고, 한 인간의 행복, 건강, 번영의 삶 또한 道를 알고 실천하는 것으로 가능한 것이다. 道를 안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몸을 관리 운영하는 주체인 참 마음의 실체를 아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이 언제 어디서 왔으며 어떠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가에서 佛家의 一体唯心造나 예수의 너의 믿음대로 될 것이다 라고 가르친 그 말씀 즉 믿음의 법칙을 믿는 것이다. 어린아이를 가르칠 때 현상의 잘못을 덮고 칭찬하는 교육으로 좋은 성과를 얻는 것이나, 나는 전능자 神의 자식, 실상이 완전 원만한 존재로서 우리는 무한사랑, 무한지혜, 무한생명의 인간임을 아는 것이다. 긍정의 믿음은 긍정을 낳고, 부정의 믿음은 부정을 낳는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음이 곧 병disease라는 사실에서 마음 쓰는 법, 즉 用心法인 道로서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以道療病과 修心正氣에 대한 東醫哲學을 믿는 것이다. 마음이 평안하지 아니하면 생명의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心氣血精의 과정적 원리를 이해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노력의 의미와 중요성을 인정해야 한다.
이렇게 道를 이해한다면 修心正氣를 위해 명상을 하라, 명상이란 마음의 평안을 얻어 생명의 에너지 활성화하여 安心立命의 길로 가는 수행법들을 말한다. 모든 종교와 철학도 이를 위해 존재해 왔고 요가나 탄트라, 참선, 국선도, 단학 등 체계적 명상법에서 명상음악을 듣거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체험하는 것으로부터 다도명상, 다양한 진언명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긍정의 마음으로 잘 선택하여 실천한다면 一心同根의 신의세계 부처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명상수련은 바른 道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心和氣和를 어렵게 하는 잘못된 관념들은 선악, 손익의 분별심과 종교간의 진리가 다르다는 차별적 분별심 등이다. 이는 개인과 집단간의 이기적 판단기준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제 민족경전인 삼일신고와 천부경의 실체를 알고 一神降衷, 性通光明, 在世理化, 弘益人間으로 가야 한다.
유불선 3교를 아우를 만하다고 했던 최치원의 풍류도와 전통의 수련법들, 그리고 道로서 나라와 세상을 구하려했던 東學人들의 처절한 희생과 東學의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예석공맹의 가르침을 하나로 보고 참진리의 길이 열려있음을 선언했던 다석 유영모의 선각자 정신에서 우리는 함께 통섭과 상생의 통일 철학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이제 정치도 교육도, 문화도 예술도, 우리철학 仙家의 정신으로 하고, 동서 철학과 종교의 통섭이 가능한 국제적인 명상센터를 많이 건립할 것을 제안한다. 전국토, 전공간을 명상의 공간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명상의 공간을 위한 오브제들”을 연구제안 한다.

2007. 9. 5.

桓人 朴商雨
명상의 공간을 위하여
Art Environment 2007 오브제 展에 부치는 글

평론


                    평론글

명상조각,
명상의 관념을 표상한

고충환 미술평론가

보통 조형의 형식논리로 치자면 크게 구상과 추상으로 구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물대상의 감각적 닮은꼴을 추구하는 태도와 철저한 형식논리를 지향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재현의 논리와 점, 선, 면, 색채, 양감, 질감과 같은 제반 형식요소에서 조형의 본질(조각의 경우에는 특히 양감과 질감, 물성과 공간감)을 추구하는 경우로서, 각각 사실주의 내지는 자연주의와 모더니즘 패러다임이 대비되는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그리고 여기에 제삼의 경우로서 구상과 추상 사이, 사실주의와 모더니즘 사이에서 일정한 자기형식을 추구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가 있겠다. 감각적 닮은꼴의 지평에서 모티프가 될만한 사물대상을 취하되, 감각적 닮은꼴 그대로를 재현하는 대신, 이를 일정한 형식논리며 추상의 논리로 재해석해 전이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외관상 추상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순수한 추상이라기보다는, 말하자면 순수한 형식논리인 소산이기보다는 어떤 알만한 사물대상을 암시하는 경우로 생각해 볼 수 있겠고, 추상의 형식논리 속에 감각적이고 재현적인 형상을 품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가 있겠다.
박상우의 조각이 그렇다. 작가의 조각은 외관상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를 미니멀한 형식논리로 풀어낸 추상조각처럼 보인다. 여기에 목재와 석재 그리고 최근에는 스테인리스스틸 소재 고유의 물성을 부각한, 그럼으로써 조각의 본질과 조형의 형식논리에 천착한 소위 모더니즘 패러다임에 충실한 조각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다만 그 뿐인가. 작가의 조각은 다만 조각의 장르적 특수
성과 조각의 본질에서 조각의 됨됨이를 찾은 소위 형식주의와 환원주의의 소산이며 결과인 것인가.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여기서 ‘처럼 보인다’는, 다소간 유보적인 기술에 주목할 일이다. 작가의 조각은 다만 조각의 본질에 천착한 모더니즘 패러다임의 충실한 번안처럼 보일 뿐,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소위 모더니즘 세대답게 모
더니즘 패러다임을 수용하지만, 그 수용이 전면적이기에는 뭔가 역부족인 면이 있고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한편으로 모더니즘 패러다임을 수용하고 공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철저한 형식주의자가 되기에는 뭔가 체질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정리를 하자면, 모더니즘 패러다임의 일정 부분을 수용하면서도 그 수용이 전면적이지는 않은, 모더니즘 패러다임에 대한
일종의 이중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그리고 이런 이중적인 태도에서 작가의 조각을 특징짓는 일말의 긴장감이 유래한다.

그렇다면 형식논리와 추상을 자기논리로 하는 모더니즘 패러다임과 함께 작가의 조각을 특징 짓는 또 다른 한 축은 무엇인가.
바로 암시와 재현이 그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기하학적 형태소들의 조합 내지는 집합으로 이뤄진 작가의 조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붕이 보이고 처마가 보이고 기둥이 보인다. 계단이 보이고 통로가 보이고 관문이 보인다. 창이 보이고 제단이 보이고 집이 보인다. 여기서 작가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를 호출해보면 문제는 뚜렷해진다. 바로, 명상이 그것이다.
여기서 명상 자체는 관념적인 대상이며,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이고 비형상적인 대상이다. 그러므로 그 자체를 형상으로 옮기기 위해선 일정한 미학적 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표상이 그것이다. 해서, 작가의 작업은 이런 명상의 관념을 형상으로 옮긴 표상이며, 동시에 명상의 비형상을 형상으로 옮긴 표상이 되기도한다. 명상의 표상이며, 명상의 공간 내지 명상을 위한 공간을 표상한다는 말이다. 제단과 사당, 기념비 내지는 기념관을 떠올리게 하는, 다소간 건축적인 구조가 두드러져 보이는 조형을 매개로 명상의 관념을 표상한 것이면서, 일종의 명상 센터를 구조화한 경우로 볼 수 있겠다(실제로 보기에 따라서 작가의 조형은 명상센터를 축도한 건축모형을 닮았다). 그 구조는 한눈에도 중앙집중식 구도가 강하고, 좌우대칭 구도가 두드러져 보인다. 군더더기가 없는 최소한의 형식과 함께 시선을 집중시키는 이 형태는 정신에 집중하고 명상에 매진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을 형태로 옮긴 것으로, 전통적인 종교 아이콘에서 그리고 기념비 내지는 기념관에서 그 선례를 볼 수 있다. 정면성의 법칙 역시 이 기획과 무관하지가 않은데, 마치 일종의 사물 초상화를 찍듯 사물대상의 됨됨이를 정면에 집중시킨 뒤 중앙에 시선을 집중시켜 정신을 하나로 흐르게 하는 것. 이 구도며 기획 모두는 그 자체로는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이고 비형상적인 명상의 관념을 표상하기 위해 찾아낸 것으로서, 가시적인 것을 통해 비가시적인 것을 암시한 것이며,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인 층위로 불러내는 것에서 예술의 존재의미를 찾는 전통적인 미학적 입장이며 태도(특히 폴 클레)와도 통한다.
이제 그 세부를 들여다보자. 먼저, 집 형상은 명상의 몸이며 정체성의 산실이다. 작가의 주제의식인 명상의 관념을 낳은 산실로 보면 되겠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대개 그 산실에는 계단이 있고 기둥이 있다. 아님, 그 변형되고 변주된 형태가 있다. 여기서 계단은 상승이며 승화를 상징하고, 기둥은 명상의 좌표며 푯대를 상징한다. 기둥 위에 새가 앉아있는 솟대의 전통적인
도상과도 통하는 대목이다. 계단은 알다시피 여기서 저기로 이동하게 해주는 이행을 암시하며, 기둥은 이곳과 저곳을 연이어주는 경계를 함축한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이행하면서, 하늘과 땅이 하나로 만나게 하는 것. 여기서 계단과 기둥으로 상징되는 이행과 경계의 관념 혹은 실천논리에 주목해야 한다. 말하자면, 전통적으로 예술가는 무당이었고, 경계를 주관하는 자였으며, 매개자인 동시에 중재자였다. 조형예술의 상당 부분이 이런 가시적인 영역과 비가시적인 영역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동시에 경계이자 매개와 관련되는 것임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그 일은 작가의 조형 속에도 그대로 투사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문의 도상이 호출된다. 이행하기 위해선 관문이 있어야 하고 통로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존재가 거듭나는 것을 상징하고, 전통적인 통과의례를 상징한다. 여기서 명상의 본질과 만난다. 명상이란 무
엇인가. 바로, 존재가 거듭남을 말한다. 존재는 어떻게 거듭나게 되는가. 내가 어떻게 깨뜨려 지는가에 관한 것이다. 헌 나를 벗고 새롭게 거듭난 ‘나’를 덧입는 것이다. 바로, 내 속에서, 나의 내면으로부터 의식이 깨지면서 재생되는, 그 어떤 의식의 유목이 일어나는 것이다.

정리를 하자면, 작가의 작업은 명상을 표상한 것이다. 그리고 이행과 유목으로 하여금 명상의 관념을 지지하고 보충하게 한다. 이행과 유목 자체를 명상에 부수되는 개념으로 봐도 되겠다. 여기서 이곳에서 저곳으로, 땅에서 하늘로, 감각적인 세계에서 관념적인 세계로, 속에서 성聖을 이행하게 해주는 이 모든 일들은 다만 의식 속에서의 일이며, 작가의 조형은 바로 그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집’(일종의 명상센터)이라는 고정된 형태 속에서 표상하고 있다. 작가의 조형은 말하자면 명상을 표상하고, 존재가 거듭나는 내면의 계기를 표상하고, 동시에 세계가 재생되는 의식의 유목을 표상한다. 그리고 그렇게 물과 빛의 도상학이 호출된다. 의식은 물처럼 흐르고, 빛처럼 편재한다. 작가의 조형 중 특히 평면조형에서 빛은 중앙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파장이며, 방사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로써 집의 중앙집중식 구조와 구도를 완성하고, 정신의 정점을 결정한다. 그리고 조형과 조형 사이, 집과 집 사이, 하늘과 땅 사이, 관념적 세계와 감각적 세계 사이, 성聖과 속俗 사이, 그리고 나와 너 사이로 물이 흐른다. 그렇게 흐르면서, 범람하면서, 그리고 때론 역류하면서 물은 명상이 가진 유기적이면서 우연한, 비결정적이면서, 가름하고 때론 가늠할 수 없는, 어쩌면 인식의 안쪽으로 불러들일 수 없는(물이 흐르는 길 즉 도道를 ‘도’라고 부를 때, ‘도’는 이미 ‘도’가 아니다) 명상의 또 다른 한 측면이며 속성을 완성한다.


Art and
Its Functions

Arthur J. Mc Taggart
Adjunct Professor of Youngnam University

Professor Parkʼs goal is to create objects which fill space gracefully, and, at, the same time, make the life of the person who looks at them a little more comfortable, Fine art has its place in life, but an object which pleases by its beauty, and which pleases by its function, is the kind of art Professer park’s interested in creating. Such functional art, as it may be called, must fit into its environment comfortably, it cannot assert its singularity, its uniqueness. Functional art must be created an awareness of its public acceptance by both young and old, and should ehnance the quality of life for all those who
also share the same environment. Functional art should be familyar - which means that, in korea, its Korean origin is clear and evident - and conscious of place in the nature and traditions of which it should be a reminder.
Functional art could be regarded first as art and then as a useful object, or it could be the reverse. The important fact is that Professor Park fashions it so, it subsumes both of these important aspects of our daily life.





















박상우,
지성知性의 정원

설인숙 큐레이터 / PASSi 문화코디네이터(미국 필라델피아)

고요함은 선禪을 뿌리로 하고 선은 참 진리를 찾게 하는 근저를 이룬다.
다양한 자극과 미감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내면의 고요란 밋밋
하고 아무런 맛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작가 박상우에게는 무미의 맛, 고
요의 적寂이 실상의 세계이다. 그는 드얀Dhyana, 즉 무심을 의미하는 선禪
을 진리의 표지로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선정적이거나 자극
적이지 않다.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예본무심藝本無心
,
작품 그 자체는 아무런 생각이 없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마음
이 예술을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속에서 보이는 분위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 분위기는 간
결하지만 정중하고, 경쾌하지만 도도한 내적 영역을 경험하게 한다. 그
러므로 그의 작품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알면
알수록 깊이를 깨달기 어려운 지성의 숲으로 빠져 들어가게 된다.
한가로운 산책자의 시선으로 봐도 그의 작품은 즐거움과 깨달음으로 만
연되어 있다. 그와 함께 구도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일상은 항상 도
도히 흐르는 강물과 같다. 그에게 물은 생명수이며, 멈추지 않는 진리에
대한 갈망이다. 거기에는 파도가 출렁이거나 돌맹이가 던져져서 파문을
만들어도 결국에는 모든 것을 품어버리는 넓은 강물의 품같은 자유와
깊은 철학자의 정신이 배여있다.
예술의 가치는 끊임없이 시도하는 작가의 실험정신에 있다. 실험하고
경험하기 위해 예술가는 자신에게 부단히 질문하고 변하지 않는 정체성
을 찾아나서야 한다. 박상우는 끊임없이 실험하는 작가이다. 쉬지않고
자신을 진리에 가까이 이끌고 가는 작가이다.
그는 환경과 예술, 그리고 대중과 철학을 어느 것 하나 도드라지는 부분
없이 매끄럽게 소통시키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그의 작품이 도道
와 예藝의 경계에 서 있는 이유이다.
박상우의 작품에는 진리를 찾아가고자하는 원願이 있고 철학자의 사유
가 깃들어 있다. 그는 ‘명상’이라는 공개적인 방법을 속 시원하게 노출하
면서 이를 다시 지혜의 말로 뱉어놓는다. 작가의 페르소나라 할 수 있는
작품의 제목들은 작가의 철학인 동시에 그가 제시하는 진리에 접근하는
길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명상, 실상, 진리, 마음이라는 추상적인 언어가 자주
등장한다. 현실과 떨어져 있음직한 추상적인 이런 언어들을 박상우는
간단한 선, 명료한 형태로 트렌스퍼 한다. 거기에는 고상한 철학은 어
느새 사라지고 일상적인 생활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형태와 친근함
만이 남겨진다. 가장 높은 철학이 가장 쉬운 곳에 존재하는 이런 일련의
부조리한 현상들이 그의 작품이 상징을 넘어 또 다른 사유의 품을 보여
주고 있음을 말한다. 신선神仙의 내력과 새로운 진리의 공간들은 작가에
게 ‘생명의 중요성’, ‘행복한 삶’을 강조하게 하는 힘이다.
박상우, 그는 멈추지 않고 예리한 지식인의 눈으로 숲속을 응시하듯 우
리에게 말을 건다. 보이는 것에 속지말고 실상의 숲속으로 들어서라고.
진리라고 하는 지도에 없는 보물섬을 찾아 떠나라고. 그는 지성의 정원
에서 한가하고 여유롭게 거닐고 있는 이미지를 통하여 역으로 생명의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다. ‘명상이란 마음의 평안을 얻어 생명의 에너지
를 활성화하여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길로 가는 수행법’이라고 말하는 그는
우리들이 존재하는 모든 공간을 명상의 낙원으로 만들어 예술과 철학을
통한 만인의 행복을 꿈꾸었던 것은 아닐까?






























박상우의 환경미술環境美術 40년:
명상조각공원, 선가仙家적 정신세계를 상상하다

배수관 조각가

예술의 사회적 역할… 환경미술
오늘날 우리가 예술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들이 원래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욕구, 그리고 그 욕구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김융희는 그의 저서 『예술, 세계와의 주술적 소통』에서 밝히고 있다. 박상우 작가는 현대사회의 자연성 상실과 비인간적 도시문화에 대한 문제해결의 방안으로 친환경적 도시환경문화 창조가 미술가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민주화된 도시민들에게 활력적 삶을 제공하는 것이 환경미술가의 지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작가의 사회적 관심이 60, 70년대 박상우의 환경미술이 촉발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박상우 작가는 긴 백발과 느린 말투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도인의 이미지로 각인된다. 내면의 세계 또한 외모에 걸맞게 동양철학東洋哲學이나 한국의 전통사상傳統思想에 대해 관심의 차원을 넘어 깊은 조예를 보여준다. 당연히 박상우의 작품세계는 이러한 동양적 자연주의적 삶의 태도에서 기인된 것이라 충분히 예견되는 대목이다.
예술가는 자신이 속해 있는 자연과 사회의 환경에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다. 이렇듯 작가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현실계의 영역에서 상호작용의 과정 중에 얻은 예술적 영감을 작품에 어떻게 잘 혼입시키느냐에 따라 타자와 차별화 된 독창성 있는 작품을 창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동양적 자연주의적 정신세계
2007년 개인전 작가노트에서 박상우의 철학적 단면을 잘 읽어 볼 수 있다. “도道를 안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몸을 관리 운영하는 주체인 참 마음의 실체를 아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이 언제 어디서 왔으며 어떠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가에서 불가佛家의 일체유심조一体唯心造나 예수의 너의 믿음대로 될 것이다 라고 가르친 그 말씀 즉 믿음의 법칙
을 믿는 것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마음이 평안하지 아니하면 생명의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심기혈정心氣血精의 과정적 원리를 이해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노력의 의미와 중요성을 인정해야 한다. 이렇게 도道를 이해한다면 수심정기修心正氣를 위해 명상을 하라, 명상이란 마음의 평안을 얻어 생명의 에너지를 활성화하여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길로 가는 수행법들을 말한다” 라고 철학적 견해를 밝히고 있다.
21세기 현대문명의 폐해를 치유할 수 있는 동양철학 사상을 바탕으로 통섭과 상생의 통일철학을 만들어야 한다고 작가는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치, 교육, 문화, 예술 등도 한국철학의 선가仙家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동서 철학과 종교의 통섭이 가능한 국제적인 명상센터를 국가적 차원에서 많이 건립하여야 한다고 염원하고 있다.

융합형 인재양성을 위한 활동
하버드 대학의 저명한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sborne Wilson은 『통섭』이라는 책에서 “환경이나 인구과잉 등 우리가 부닥치는 대부분의 문제는 자연과학적 지식과 인문·사회적 지식이 통합되지 않고서는 해결 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2007년 12월 1일자 중앙일보에 따르면, 뉴욕 타임즈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최고 권위의 미술대학으로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를 꼽았다. 당시 토니 존스 학장은 “학부때부터 전공 구분없이 미술의 모든 분야를 두루 공부할 수 있는 학제간 교육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현실 세계에서는 건축과 설치미술, 실내장식과 패션간의 경계가 없듯이 우리 대학도 그런 식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에 기존의 전공 영역을 뛰어 벗어나 통합학문 개념의 환경디자인 관련 전공이 전무한 상태에서 1981년 영남대에 환경조형디자인 전공이 개설되었다. 외부환경조형디자인을 중심으로 인테리어, 조경,
건축, 조각 등 관련 제 영역들과 통섭을 위한 다양한 교과과정을 운영하였다. 강사 배정에 있어서도 디자인 이외에 조경, 건축, 조각 등 타 분야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학생들에게 다양한 장르의 학문을 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학생들은 졸업 후 디자인과 예술 분야 외에도 건축, 조경, 토목, 도시계획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해 활동하고 있다.
이 전공을 개설한 이가 바로 박상우 교수로 일찍부터 아트 앤 디자인Art & Design을 추구하였다. 홍익대에서 목공예를 전공하면서 조형감각을 키운 후 서울대 대학원 환경조경학과에서는 환경에 대한 거시적 안목과 공간설계능력을 학습하였다. 작품의 주제는 주로 자연을 소재로 한 동양적 사상이 담긴 선仙적인 환경조각環境彫刻이 주류를 이룬다.
현재는 팔공산 깊은 산속에서 선Zen아트센터라는 야외조각공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향후 다도茶道, 차문화 명상원 등 미술자연치유의 명상센터 조성이 궁극적 목표라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

환경미술環境美術-자연과의 주술적 대화
독일의 행위예술가 조셉 보이스Joseph Beuys는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예술을 설명할까>라는 퍼포먼스를 통해 이미 예술이 영혼의 치유와 관계된 작업이고 그 치유가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있음을 보여준 적이 있다. 자연과의 관계 회복은 그의 오랜 주제였다.
전자에서 언급한 철학자 김융희도 “예술은 자연과 세계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명상冥想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일체감을 느끼는 일, 작은 우주인 인간이 커다란 우주와 조응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일이다”라고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조명하고 있다.
박상우 작가의 환경미술은 산업사회에 지친 현대 도시인들에게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해 가는 하나의 공간 조형적造形的 치유治癒 행위이다. 마치 진리를 향해 묵묵히 수행하는 수도자修道者의 삶처럼… 그렇게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2014년 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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