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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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구

작가 작품

01_김주원씨의 박진수씨_에 대한 보고

전시전경_2018

02_만들어진 유물__잘 모르는 것_에 대한 기록

시멘트, 혼합재료_가변설치_2015-2020

03_만들어진 유물__잘 모르는 것_에 대한 기록

부분

04_Map

종이에 염색, 펀칭, 연필_28.5x264cm_2017-2020

05_Re-place 밤나무 Ⅰ, Ⅱ

시멘트 캐스팅_2002

06_내일 완성될 이해의 초도

전시전경_2017

07_잘 아는 사람_을 위한 기념비

혼합재료, 가변설치_2017

08_손진영씨의 B씨

09__김주원씨의 박진수씨__esquisse36

가변크기_혼합재료_2017-2020

10__잘 아는 사람_을 위한 기념비

2017

작가 프로필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원 조소과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조소과 졸업

개인전
2018 ‘김주원씨의 박진수씨'에 대한 보고 A report about 'Park Jinsu of Kim Juwon'
(Gallery Finger Forum, Nagoya, Japan)
2017 ‘내일 완성될 이해의 초도’ (수호갤러리, 성남)
2013 ‘Obscure_모호한’ (국제조각페스타_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 서울)
2011 ‘the treasures’ (Kips gallery, New York)
2010 ‘무거운_침전' (수호갤러리, 성남)
2007 ‘storage 창고’ (中和갤러리, Tokyo, Japan)
2006 'preserved things 저장된 것들' (북경염황미술관, Beijing, China)
2004 ‘해체된 의미의 파편’ (세종갤러리, 서울)
2004 ‘hidden things 숨겨진 것들' (AMS Art Gallery, Vancouver, Canada)
2002 ‘RE..’ (서호갤러리, 서울)

주요 초대전 및 단체전

2019 ‘10분거리’ (아트스페이스 퀄리아, 서울)
Connect : the Dots 2019 (한벽원미술관, 서울)
2018 Visionary Platform 2018 (갤러리아리수, 서울)
2017 ‘씨, 스루 See, Through’ (소다미술관, 화성)
디자인코리아 아트페어 (킨텍스, 일산)
2016 B.A.F (한국디자인 진흥원, 성남)
19782015 (이영미술관, 용인)
2015 ‘발견하다! 圖·書·館’ (서대문구 이진아기념도서관, 서울)
'LOOK at their STORIES' (성곡미술관, 서울)
2014 ‘wonder-full’ (서울시립 경희궁미술관, 서울)
한국 현대조각 초대전(춘천MBC)
2013 조각가의 배양실 (갤러리 시:작, 서울)
‘Volare-over the land (Lynn J gallery, LA)
2012 ‘너와, 어린왕자를 만나다’ (한전아트센터,서울)
‘숨표’ (광화랑,서울)
2011 Red Dot Miami Art Fair (마이애미아트페어/Kips gallery,마이애미)
중․한 여성작가 초대전 (장춘세계조소공원 전시관, 중국)
2010 ‘With'전 (한전프라자갤러리,서울)
‘Mirthful Walk' (문갤러리,홍콩)
2009 ‘현대조각의 조각 1+1’전 (이천시아트홀전시관,이천)
‘13월의 크리스마스’전 (우모하갤러리, 용인)
2008 한향림갤러리 기획초대 ‘seven springs-일곱개의 풍경’ 展 (한향림갤러리,파주)
‘따뜻한 전시회’展 (갤러리 원,서울)
2007 북경 태산자화랑개관전-생명의 기호전 (북경 태산자갤러리,북경)


현 재
이화여대, 서울예고 출강
그룹 너와, 조각그룹 B, 이화조각회 회원

작가 노트

								

평론


                    강선구 작가 ‘내일 완성될 이해의 초도(草圖)’

의미를 멈춘 자리에는 존재


안다고 가정하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순간, 세계는 낯설어진다. 내가 알기도 전에 익숙해진 사물, 대상, 그리고 타자들. 그 익숙함 속에 머물다 어느 순간 괄호를 치면(후설처럼 생활 세계의 대상들에 대하여 판단중지하는 어느 순간) 나는 이 세계의 안에 있는 것인가, 바깥에 있는 것인가.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만 사로잡혀 있으면 굳이 괄호를 칠 필요성을 느끼지 않지만, 우리는 수많은 대상과 타자들과 얽혀 살기에 내가 원치 않는다 해도 불안과 낯선 경험의 순간들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또한 나는 나 이상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기에, 누군가가 짜놓은 틀에서 수동적 자아로 머물고 싶지 않다. 나는 나의 표현으로 ‘알고’ 싶고 ‘만나고’ 싶다. 강선구 작가는 그동안 의미화로 가득 찬 이 세계의 관습적 대상들을 작가 자신의 표현 행위로 중지시켜 의미를 해체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의미화의 상징이 되는 오브제들을 통해 대상이 지닌 관행적 의미들을 해체하는 작업에서 나아가, 내가 그동안 모르던 그것, 혹은 그 사람을 새로운 시각적 행위를 통해 기록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작가에게 ‘기록’이 갖는 의미는 내가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주변의 사물, 그리고 사람에 대해 이해해 보려는 의지이자 나만의 명명 행위다.

나무를 알아가는 자리에서 이해되는 타자

<내일 완성될 이해의 초도(草圖)>전(수호갤러리, 2017)은 작가가 최근 진행해 온 두 작업, ‘그것과 그 사람에 대한 기록 작업’을 중심으로 전시되었다.「잘 아는 사람을 위한 기념비」에서, 작가는 설문지 작성자에게 본인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 기록하고 가명을 짓게 한다. 작가는 알지 못하는 미지의 인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분류하고 정리한다. 전시장에 보관된 기록물을 통해 누군가의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감상자에 의해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되어진다. 감상자가 누군가의 ‘가장 잘 아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다리에 오르거나 켜켜이 쌓인 기록물을 한 장씩 펼쳐 읽는 수고로움을 거쳐야 한다. 작가는 기록과 분류, 미지의 인물에 대해 가명을 지어줌으로써 해석 행위에 참여한다. 이제 작가가 지은 이름인 김주원 씨는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박진수 씨를 미지의 감상자에게 소개하게 된다. 이렇게 진행된 ‘잘 아는 사람을 위한 기념비’는 정성연 씨와 손진영의 B씨와 김주원 씨의 박진수 씨를 ‘알게’ 해줄까? 내가 아는 그는 당신이 아는 그와 같은 그일까.

「만들어진 유물_잘 모르는 것들에 대한 기록」에서 작가는 자신이 생활하는 반경을 중심으로 주변 나무의 살아있는 가지 일부를 흙으로 감싸 본을 뜬다. 그 본뜬 자리를 실로 묶어 두고 자신이 알지 못하던 그 나무의 학명을 나무도감에서 찾아본다. 작가는 흙으로 본뜬 형상에 시멘트를 부어 떠낸 형을 솔로 털어내고 기름칠하고 수건으로 닦아 낸다. 시멘트로 떠낸 나뭇가지의 형상은 조금씩 어긋나고 뒤틀려 제각각이지만 애써 갈아내거나 다듬지 않는다. 작가가 본뜬 나뭇가지의 표본은 나무의 학명이 기록되어 ‘만들어진 유물’이 된다. 작가는 자신이 본뜬 나무를 GPS 좌표상에 구멍으로 표시하여 ‘나무를 알아가는 과정’을 지도에 완성해 나간다. 작가의 두 작업. 나무를 알아가는 과정과 미지의 누군가에 대해 아는 과정은 의미화를 목적하지 않는 ‘과정이자 행위’에 가깝다. 잘 아는 사람을 위한 기념비를 만드는 과정과 잘 모르는 것들을 기록하는 행위는 타자와 내가 함께 ‘알아가는 과정’이자 이름을 짓는 행위다. 그래서 작가의 작업에서 만들어지는 유물과 기념비는 과거의 기록물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붉은 실의 자리, 지금이다.

고정된 의미 상징을 모호하게 하기

강선구 작가는 가장 기하학적인 형태 중 하나이자 평범한 형태인 육면체의 큰 틀에 책이나 병과 같은 사물 오브제를 대입시켜 낯선 상황으로 전환시키거나, 시멘트 덩어리와 결합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익숙한 사물은 본래의 기능과 의미를 잃고 새로운 형태의 모호함(ambiguous)을 감상자에게 전달한다. 작가는 틀로 인식되는 육면체, 기능으로서 주어진 병, 의미로서 강제하는 책 등을 하나씩 상징적으로 해체하여 예술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회의의 과정을 거쳐 왔다. 육면체의 형상에 파편적으로 해체된 인체의 흔적을 음각으로 드러낸 작품들은 상징은 남아 있으나 실존성은 유효하지 않으므로 현실에 존재한다기보다 ‘존재했었다’는 회상의 흔적, 인간 존재 가치에 대한 회의를 제기한다. 또한 중독성을 지닌 소비재로 인식되는 병이라는 사물 역시 시멘트 캐스팅 작업을 통해 고정된 상징적 의미를 인식할 수는 있으나 실제로 마실 수 있는 내용물이 들었다고 상상할 수 없기에 감상자는 상징성에 주목하게 된다. 작가에 의하면, 실제 오브제와 캐스팅된 오브제는 현실과 현실의 해체라는 차이점을 나타낸다. 또한 이 병에 붉은 실을 감는 행위를 통해 제작의 의미, 예술 영역으로의 전환이라는 측면을 강조한다. 이러한 작업 역시 대상에 대한 인식 과정을 고정된 의미 상징으로부터 모호하고 생소한 것으로 전환시킨다.

이후 작가는 흐릿한 인물 형상의 오브제에 채색을 하거나, 스크래치를 가하거나, 빛을 투사하여 누군가의 이해 속에 갇혀 대상화된 인물들을 형상화했다. 또한 어떤 인물 사진을 놓고 인터넷에서 찾아낸 무작위 정보를 통해 상충되고 모순되는 해석의 지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작업을 통해 작가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내가 대상이라 가정하는 대상, 내가 너라고 가정하는 너는 정말로 내가 알고 있는 너인가. 작가의 작업에서 특히 주목하게 되는 오브제는 2003년부터 작업해 온 '책(book)'(The Book I 시멘트 캐스팅, 전사, 철분 35x25x5cm, 2003)이다. 세상의 책, 특히 사전에는 현상계에서 이미 주어진 수많은 의미들이 집약되어 있으며, 세계를 일방향으로 해석하는 틀로서 작용한다. 이러한 틀은 세상을 손쉽게 규정하고 정리하기에는 유용할지 모르나, 그러한 규준으로 규정되지 않는 개인이나 대상에 대해서는 알려주는 것이 없다. 더욱이 이러한 틀의 산물은 어느 때는(아주 빈번히)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 행위를 억압하기도 한다. 작가는 물리적 공간에서 책이 지닌 이 심리적 확장성,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의미의 공간을 시멘트라는 재료로 고체화시킨다. 외형상 책이라 인식할 수는 있지만 의미를 지니지도 읽을 수도 없어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이 책은 과연 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예술의 영역으로 가져온 책이라는 대상은 이제 작가가 친 괄호 안에서 모호한 대상이 된다. 작가는 왜 대상에 대한 의미의 ‘박제화’, 의미라 가정되어진 의미를 해체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을까. 나의 판단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주어진 지식, 문자, 의미에 대한 회의, 이미 주어진 누군가에 대한 의미화에 대한 적극적인 회의(reflection) 과정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회의의 과정에서 나아가 대상에 대한 이름 짓기, 세상이 규정한 책이 아니라 나의 책, 우리의 책을 만들려 한다.

알아가는 과정과 이름 짓기를 통한 만남

작가의 현재 작업은 의미를 해체하는 회의의 자리에서 새로이 시작한 기록 행위, 과정을 통한 도약의 지점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전 작업에서 회의한 오브제들 중 특히 책에 주목했다. 외형상 책이라 인식할 수 있으나 의미를 지니지도 읽을 수도 없는 책, 규정되고 의미화된 대상에 대한 회의에서 이제는 그 대상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고, 그래서 나와 누군가의 명명을 통해 알아가기 위한 예술 행위로 이동한 것이다. 알아가기 위한 작가의 준비 과정은 ‘초도(草圖)’를 제작하는 행위로도 드러난다. 작가가 흙으로 나무의 본을 뜨고 솔로 털어내고 다듬는 과정, 그 나무 형을 시멘트에 캐스팅하는 과정, 형을 떠낸 나무 자리를 실로 묶고 나무도감에서 학명을 찾아 기록하는 과정, 나무를 만난 자리를 지도에 표시하는 과정은 아주 천천히, 최대한 형상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마치 명상을 하듯 진행된다. 그 정성스러운 과정은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자기화의 과정이자, 작가 자신을 찬찬히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사람’을 참여시켜 나의 세계 안에서 만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강선구 작가의 작업은 ‘알아가는 과정’이자 ‘이름을 짓는 행위’다. 그리고 작가 자신과 대상과 그리고 작가가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아는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관계 맺기다. 그의 작업에 ‘타자’가 등장했다는 점은 이 새로운 전환이 가져오는 변화를 가장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대상에 대해 괄호를 치고 의미를 해체하는 작업에서, 이제는 누군가를 알아가기 위해, 누군가를 초대하여 함께 이름을 짓는 행위로 나아가기. 이 명명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만남’을 조심스럽게 경험하게 된다. 작가의 기록물로서의 작품, 누군가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에 대해 표현한 사전에는 없는 문장들은 마치 누군가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표정과 마주하는 듯하다. ‘감정에 솔직하지 않다.’ ‘미안하다는 말과 용서를 잘 하지 못한다.’ ‘목소리가 크다.’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 ‘그냥 괜찮다고 한다.’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한다.’… 등의 표정을 지닌 얼굴들. 레비나스가 타자의 ‘얼굴(face)'에서 발견한 현전성에 대해 데리다는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타자의 얼굴은 불확실하고 모호하다고. 데리다의 의문은 레비나스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 존재에 대한 질문, 긍정에 가깝다. 의미를 해체한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타자, (비)의로서의 너는 존중할 만하지 않거나, 남루하거나, 심지어 흉측하거나 무서운 표정을 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가 타자와 만남을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타자(라는 모호함과 불확실성)를 통과해야만 존재로서의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알지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비록 나의 초도(草圖)를 오늘 이해하지 못하고 내일 완성할지라도, 살면서 마주치게 되는 불확실성과 다층성을 나무를 알아가듯 천천히 하나씩 나의 행위로서, 나라는 존재로 표현하려는 시도. 의미화의 대한 오랜 회의 과정을 거쳐 타자와 만나려는 작가의 시도, 그 표현 행위는 그래서 이전보다 자유로운 (비)의미화의 과정, 충분히 가치 있는 ‘질문하기’로 보인다.

이정화(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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